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현황 및 강화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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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현황 및 강화 방안
이준명 수석연구원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제조 강국으로 세계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차량용 반도체가 대거 포함된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미약한 편이다. 2020년 우리나라의 메모리 IC는 세계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였으나, 시스템 반도체의 점유율은 3%에 불과했다. 수출에서도 시스템 반도체의 비중은 30.5%로 메모리 반도체의 비중인 64.5%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차량용 반도체만 떼놓고 보면 경쟁력 부족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국은 완성차 생산량에서 세계 5위(2020년 기준), 수출액에서는 세계 6위(2019년 기준)로 미국, 일본, 독일 등과 함께 자동차 강국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규모는 9.4억 달러로 우리가 보유한 자동차 생산역량과 비교해 지나치게 작다. 이에 반해 미국, 일본, 독일은 각각 텍사스인스트루먼트(미국), 르네사스(일본), 인피니언(독일) 등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기업을 보유해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규모가 각각 130억, 93억, 72억 달러에 달한다. 이들은 차량용 반도체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자동차 생산 및 수출의 점유율보다도 높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차량용 반도체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3%로, 자동차 생산량(4.3%) 및 수출액(4.6%)의 점유율보다 낮아 이들과 대비된다.
그러나 국내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여타 반도체 대비 2~3배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국내 차량용 반도체의 매출은 연평균 25.2%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며 세계시장 점유율이 2015년 1.3%에서 2018년 2.3%로 크게 늘었다. 다만 산업 경쟁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차량용 반도체 팹리스(설계) 매출은 2015년 1.1억 달러에서 2019년 1.8억 달러로 성장하였음에도 세계시장 점유율은 4.8% 수준에서 5년간 정체 중이다. 한편,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매출 상위 100개 기업 리스트에 국내 기업은 종합 반도체 기업 5개, 팹리스 기업 3개로 총 8개가 포진하고 있다.
▲ 차량용 반도체 품귀사태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응력은 구조적으로 취약한 상황
산업의 규모가 크지 않다보니, 현재 전 세계적인 차량용 반도체 품귀 사태에 대한 국내 산업의 대응력도 기본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차량용 반도체의 국산화율은 5% 미만에 불과하며, 국내 완성차 기업들은 차량용 반도체 핵심부품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생산 중인 차량용 반도체의 품목도 네트워킹용(IVN), 인포테인먼트용(CIVI) 반도체 등 일부 분야에 국한되어 있다.
제조공정 구조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단기간 내 생산역량을 늘리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현재 IT기기 및 가전제품용 반도체 생산에 주로 활용되는 12인치 웨이퍼 첨단 팹 공정의 생산 비중이 82.9%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나, 차량용 반도체 생산에 주로 활용되는 8인치 웨이퍼 구형 팹 공정의 생산 비중은 14.6%로 대만, 일본 등 주요 반도체 생산국 대비 가장 낮다. 미세공정 노드를 기준으로 살펴보더라도 우리나라는 모바일 및 PC용 AP생산에 주로 활용되는 20nm 미만의 제조공정이 70%라는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차량용 반도체 생산 여력이 구조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국내 기업들도 차량용 반도체의 미래 성장성을 보고 투자와 기술 개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케이이씨는 전량을 미국 수입에 의존하던 자동차 공조시스템(HVAC)용 저압 모스펫 반도체를 2020년 국산화에 성공하였다. 삼성전자는 올해 메모리 반도체에 AI 엔진을 결합한 AI 반도체 ‘HBM-PIM’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였고, 구글의 NPU 기반 자율주행용 칩 설계를 시스템LSI사업부에서 수주하기도 했다.
▲ 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
차량용 반도체는 차세대 모빌리티 산업의 핵심부품이자 4차 산업혁명의 신성장동력인 반도체와 자동차의 밸류체인이 결합된 분야이다. 이번 차량용 반도체의 글로벌 공급 부족으로 인한 자동차 생산량 감축 사태는 반도체가 자동차 밸류체인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방증한다. 특히 반도체와 자동차는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26.7%를 담당하는 기간산업이라는 점에서 두 산업이 결합된 차량용 반도체는 전략적으로 육성이 필요한 산업이다.
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 생태계는 형성 초기 단계로 평가된다. 95% 이상의 높은 해외의존도와 인포테인먼트 등에 국한된 한정된 제품 포트폴리오, 8인치 웨이퍼 공정캐파 부족 등의 측면이 이런 평가의 이유이다. 따라서 현재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산업 생태계의 기초 경쟁력부터 키워야 한다.
그러나 모든 종류의 차량용 반도체에 경쟁력을 보유할 수도 보유할 필요도 없다. 업계의 기술 트렌드를 반영하여 앞으로 성장이 유망하고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전략적으로 집중하면 된다. 본고에서는 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3가지 지표를 중심으로 중장기적 관점에서 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방안을 도출하고자 한다.
[경쟁력 강화방안①] 자체 생산역량 강화
현재 차량용 반도체는 8인치 웨이퍼 및 30nm 이상의 제조공정을 주로 활용하므로, 해당 공정을 충분히 갖춘 대만 TSMC에 차량용 반도체의 글로벌 위탁생산 수요가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IT기기용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차량용 반도체도 꾸준히 소형화, 고성능화되고 있어, 첨단공정의 활용도는 앞으로 점진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현재 국내 파운드리 기업이 확보하고 있는 12인치 웨이퍼 및 20nm 이하의 첨단공정의 활용을 점진적으로 확대하여 자율주행, 인포테인먼트 등 고성능, 고부가가치 차량용 반도체의 생산역량을 조금씩 갖춰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국내 중소기업 팹리스(중소기업‧스타트업)와 파운드리(대기업), 자동차업계 간 공급과 수요를 연계하여 차세대 차량용 반도체의 공동 연구개발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더 나아가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차세대 차량용 반도체의 생산과 조달에도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파운드리 기업은 고성능 차량용 반도체에도 위탁생산 역량을 일부 할애함으로써 모빌리티 분야에 사업영역을 전략적으로 확장해야 한다. 대만 TSMC도 올 3월부터 12인치 웨이퍼 55nm 공정에서 생산하는 디스플레이구동칩(DDI) 캐파의 15~20%를 차량용 MCU와 전력 반도체에 할애하기 시작했다.
한편, 전기차 보급으로 수요가 늘어난 전력 반도체 등 향후 성장이 유망하나 8인치 이하 웨이퍼 구형 공정에 적합한 품목에 대해서는 증설투자에 대한 지원 타당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가령 실리콘카바이드(SiC) 전력 반도체의 경우 글로벌 시장규모가 2020년 7억 달러에서 2030년 100억 달러로 연평균 32%라는 높은 성장률이 기대되는 유망 품목이다. 다만, 차량용 반도체는 표준화 수준이 낮고 출하량이 적어 규모의 경제 달성이 어렵기 때문에, 기업은 반드시 장기적인 관점에서 증설의 비용‧편익을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경쟁력 강화방안②] 산업 포트폴리오 확장
차량용 반도체 기업들은 밸류체인의 변화 속에서 소프트웨어 영역에서 제품 차별화 요소를 찾아야 한다. ADAS‧자율주행, 전기 파워트레인, 인포테인먼트‧텔레매틱스 등 향후 소프트웨어 분야의 성장성이 큰 부품군을 중심으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 향후 E/E 아키텍처의 변화와 통합 OS의 개발 트렌드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소프트웨어 확장성을 갖춘 통합형(SoC) 차량용 반도체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일본 르네사스는 재사용 가능한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차량용 반도체를 서로 다르게 구성된 하드웨어 솔루션에 탑재하여 성능 개선의 효율성을 높였다.
정부 차원에서는 아직 시장에 절대강자가 없는 차세대 반도체 분야에 대한 적극적 투자와 생태계 구축이 요구된다. 자율주행용 AI 반도체의 팹리스 설계 역량 강화를 위해 반도체, AI 알고리즘, 통합 OS 등을 아우르는 개발 생태계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우리 정부는 국내 차량용 반도체 팹리스 기업을 대상으로 반도체 양산 전 시제품 제작비용 지원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신소재 기반 전력 반도체 개발에 대한 지원도 강화되어야 한다. 전기차 전력효율 관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SiC, GaN 등 신소재를 기반으로 한 전력 반도체가 각광받고 있다. 해당 분야에서 기업의 연구개발 활동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국내 중소형 반도체 및 자동차 업계와 IT업계, 연구소 및 대학 등이 활용 가능한 민간 주도의 개발 플랫폼과 기술 사업화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일례로 중국의 바이두는 자율주행 개발 플랫폼을 전 세계 완성차, 부품기업에 오픈소스 형태로 공개함으로써 자사의 AI 알고리즘을 고도화하는 것은 물론, 이를 기반으로 자율주행용 AI 반도체 자체 개발에도 성공하였다.
[경쟁력 강화방안③] 기술환경 변화 대응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기차와 자율주행 기술의 고도화는 통합형 E/E 아키텍처와 고성능 SoC 기반의 DCU 및 통합 ECU의 발전 등 기술환경의 변화를 수반한다. 더군다나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시장 진입으로 자율주행 전기차의 기술 플랫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이러한 기술환경 변화에 대한 기업의 민첩한 대응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이를 위해서는 반도체와 전장부품, 완성차기업 간 기술로드맵을 공유하거나 차세대 반도체를 공동 개발하는 등 전략적 협업을 통해 경쟁력 있는 자율주행 전기차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독일의 인피니언은 2019년부터 폭스바겐 그룹의 협력 네트워크에 파트너사로 참여해 전기차 플랫폼과 차세대 차량용 반도체의 기술 요구수준을 함께 논의하고 있다.
기업들은 국제적인 기술 협의체에도 참가하여 해외 기술 동향을 살피고 자율주행, V2X 통신 등 형성 초기 단계에 있는 신산업의 표준화 작업에 적극 관여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영국 반도체 기업 ARM은 자율주행 기술 표준화를 위해 2019년 컨소시엄을 구성하였는데, 여기에 보쉬, 콘티넨탈, GM, 엔비디아, NXP, 도요타 등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참여 중이다.
지난 3월 국내에서도 정부 주도로 ‘미래차-반도체 연대‧협력 협의체’가 구성되었다. 여기에는 완성차기업인 현대자동차를 비롯하여 삼성전자, DB하이텍, 텔레칩스 등 반도체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모빌리티 서비스를 개발하는 IT 및 통신 기업은 빠져있는 점이 다소 아쉬운 점이다. 해외에서는 구글, 바이두, 퀄컴 등 IT 및 통신 기업이 모빌리티 플랫폼의 공동 개발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우리도 점차 IT, 통신 기업으로까지 기술 협업의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소프트웨어의 확장성을 기반으로 한 통합형 E/E 아키텍처로의 기술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편, 장기적으로는 차량용 반도체 기술을 다른 산업에 응용하는 방안도 추진해야 한다. 차량용 반도체 개발에는 까다로운 신뢰 및 안정성 기준이 요구되므로 드론, 로봇, 선박 등 미래 모빌리티 분야와 IoT, 보안시스템 등 타 산업에도 충분히 기술을 응용할 수 있다. 실제로 NXP, 인피니언 등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기업들은 전체 매출에서 자동차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38% 수준이다. 이들은 산업용 IoT, 보안, 통신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는 반도체도 함께 개발 중이다.
이와는 반대로 다른 산업에서 차량용 반도체로 기술을 응용하는 경우에도 지원이 필요하다. 다른 산업에 쓰이는 반도체의 개발역량을 보유한 중소기업 또는 스타트업이 차세대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신규 진입하는 경우, 이에 대한 연구개발 지원 및 세제 혜택 제공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 차량용 반도체 성장잠재력 갖춘 우리나라, 기초적인 산업 생태계부터 구축해야
우리나라는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성장잠재력을 이미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 반도체의 수요처로는 세계 5위 규모의 자동차산업을, 공급처로는 세계 시장의 18.4%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유한 세계 2위 규모의 파운드리 역량은 잠재적인 경쟁력 요인이다. 성장성이 큰 고부가가치 차량용 반도체 품목을 중심으로 첨단공정의 활용도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 부문의 비교우위도 자율주행용 AI 반도체 등 차세대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요소다.
성장이 유망하고 우리가 강점을 지닌 분야를 중심으로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생산성, 혁신성, 견고성 등 기초 경쟁력부터 키워야 한다. 현재 소수에 불과한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 위주의 팹리스 부문의 설계역량 강화를 중심으로 산업 생태계 구축에 성공한다면 국내 시장은 물론 해외 시장에서도 승산이 있다. 완성차 강국을 넘어 미래 모빌리티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차세대 차량용 반도체의 경쟁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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