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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 경제 전환의 핵심: ELV 개정안, 지속가능한 소재가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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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ICA
댓글 0건 조회 67회 작성일 25-09-05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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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 경제 전환의 핵심: ELV 개정안, 지속가능한 소재가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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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동차연구원 탄소중립기술연구소 소재연구본부 정선경 본부장


1. 순환 경제 전환의 출발점, 자동차 산업

유럽연합의 정책적 배경과 글로벌 비교
전 세계가 기후위기와 자원 고갈이라는 거대한 과제에 직면하면서, 유럽연합(EU)은 이를 기회로 삼아 새로운 산업 전환의 길을 열고 있다. 2019년 발표된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은 그 상징적 시작점이었다. 이 정책은 단순한 환경 보호가 아니라, 에너지·산업·교통·농업 등 전 산업의 체질 개선을 요구하는 ‘경제 전략’이다. 목표는 명확하다. 2050년까지 EU 전체의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55% 감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유럽만의 독자적 시도가 아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2022)**을 통해 청정 에너지와 친환경차 산업에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일본은 ‘그린 성장 전략(2021)’을 통해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산업별 로드맵을 구축했다. 중국 또한 ‘탄소 피크-탄소중립(쌍탄소)’ 목표를 내세우며, 재활용 소재·전기차 배터리 회수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즉, 순환 경제는 지역적 과제가 아니라 글로벌 산업 경쟁의 새로운 룰이 되고 있다.

순환 경제와 자동차 산업
이 전환의 핵심은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이다. 기존의 직선형 가치사슬(생산-소비-폐기)에서 벗어나, 제품과 자원을 가능한 오래 활용하고, 재사용·재제조·재활용을 극대화하는 구조로 재편하는 것이다. EU는 2020년 ‘신 순환 경제 실행계획(New Circular Economy Action Plan)’을 발표하며 이를 제도화했고, 제품 설계 단계에서부터 재활용 가능성과 수명을 고려하도록 강제했다.
자동차 산업은 특히 자원 소비와 폐기물 발생량이 크며, 산업 파급력이 막대하다. 따라서 EU는 자동차를 순환 경제 전환의 우선 타깃으로 삼고, **폐자동차 지침(ELV Directive)**을 통해 구조적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초기에는 단순한 폐기물 관리에 가까웠으나, 최근 개정 논의는 설계 단계부터 회수·재활용까지 아우르는 산업 체계 전환으로 나아가고 있다. 2025년 확정될 예정인 ELV 개정안은 내연기관차뿐만 아니라 전기차, 버스, 이륜차 등 전 차종을 포괄하며, 미래차 산업 전체의 변화를 요구하는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표 1에서 볼 수 있듯, 유럽 그린딜은 에너지, 교통, 산업, 농업, 순환 경제 등 전 부문에 걸친 체계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있으며, 이는 자동차 산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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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동차 산업의 대전환, ELV 규제가 바꾼다

개정 ELV 규제의 핵심 방향
기존의 **ELV 지침(Directive 2000/53/EC)**은 승용차에 국한되어 있었으나, 새 개정안은 트럭, 버스, 이륜차, 특장차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 단순한 폐차 관리가 아니라 ‘설계 단계부터 재활용을 고려한 순환적 설계(circular design)’를 의무화하며, 이는 자동차 기업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한다.
특히, **디지털 순환성 차량 여권(Digital Circularity Vehicle Passport)**의 도입은 산업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모든 부품과 소재는 어떤 재료가 사용되었고, 재사용·재활용 가능성이 어떤지를 기록해야 하며, 이는 VIN(차량식별번호) 단위로 추적 가능하다. 재활용 플라스틱 사용률도 단계적으로 의무화되어, 10년 내 차량 플라스틱의 25% 이상을 재활용 원료로 충당해야 하고, 그 중 일부는 반드시 ELV 출처여야 한다.
생산자책임(EPR)도 확대된다. 제조사는 차량 회수·수송·처리 비용을 전액 부담하며, 소유주가 없는 폐차까지도 책임져야 한다. 이는 소재 전 생애주기 관리 책임이 사실상 제조사와 공급망 전체에 전가되는 구조를 의미한다.
표 2는 기존 ELV 지침과 2025년 개정 예정안의 주요 차이를 요약하고 있으며, 산업계가 직면할 변화의 폭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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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에 미치는 파급 효과
새로운 규제는 자동차 제조사뿐 아니라 소재 산업 전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플라스틱, 금속, 고무, 복합소재, 배터리 등은 모두 LCA(Life Cycle Assessment) 기반의 환경 성능 검증과 재활용 가능성 중심의 설계 혁신이 필수가 된다. 소재 기업이 이러한 요구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유럽 시장 진출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있다.


3. 순환 경제 시대, 소재 없이는 지속가능한 자동차도 없다

(1) 플라스틱: 재활용 가능성이 곧 경쟁력
플라스틱은 자동차 내외장재, 전장부품에 폭넓게 쓰이지만, 혼합재질과 복잡한 구조 때문에 재활용이 어렵다. EU는 차량에 일정 비율 이상의 재활용 플라스틱 사용을 의무화하고, 디지털 제품 여권(DPP)을 통해 성분과 출처를 공개하도록 했다.
따라서 기업은 단일 소재 설계, 부품 구조 단순화, 분해 가능한 색소 사용, 비접착 조립 방식 등을 채택해야 한다. 단순히 재생 원료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 추적성과 환경 성능 입증까지 요구된다. 예컨대, 독일 BASF는 화학적 재활용을 통해 폐플라스틱을 고순도 원료로 되돌리는 ‘ChemCycling’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OEM과 협업 중이다.
(2) 고무: 회수와 재가공을 위한 분해 가능성
타이어와 각종 부품에 쓰이는 고무는 내열성·내마모성이 뛰어나지만, 가교 구조 때문에 재활용이 어렵다. 전통적으로 소각·매립이 주류였으나, 최근에는 열분해, 탈황(Devulcanization), 마이크로파 해체 기술이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미셰린과 브리지스톤은 각각 폐타이어 열분해 기술에 투자하며, 카본블랙과 오일을 회수하는 공정을 확대하고 있다.
(3) 금속: 단순 회수를 넘어 정제 효율로
알루미늄, 마그네슘, 구리 등은 전기차 보급으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합금 상태로 사용되어 분리와 정제가 어렵다. 예컨대 전기차 한 대에는 내연기관차보다 2~4배 많은 구리가 들어간다. 이에 따라 저에너지 정제, 고순도 회수 공정, 친환경 합금 개발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 된다. 노르웨이 Hydro는 ‘Hydro CIRCAL’이라는 인증 재활용 알루미늄을 통해 OEM 공급을 확대하고 있으며, LCA 데이터를 기반으로 환경 우위를 입증하고 있다.
(4) 폐배터리: 희귀금속의 순환 체계
전기차 배터리는 리튬, 니켈, 코발트 등 고가 금속이 집약된 자원이자 유해 폐기물이다. EU는 별도의 배터리 규제를 통해 회수·재활용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디지털 배터리 여권’을 통해 구성 원소와 사용 이력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중국 CATL과 유럽의 Northvolt는 각각 폐배터리 회수 라인을 구축하여, 리튬·니켈의 고순도 회수율을 90% 이상 달성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5) 희귀 자원: 소재 독립성과 고순도 회수
희토류, 백금족 금속 등 희귀 자원은 공급망 리스크가 크다. EU는 이를 전략 자원으로 분류하고, 회수·재사용 비율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한다. 예컨대 프랑스는 ‘Rare Earth Recycling Project’를 통해 폐모터에서 네오디뮴 회수를 상용화하려 하고 있으며, 일본은 폐촉매에서 팔라듐을 고순도로 회수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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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환경 영향을 입증하라: 데이터 시대의 LCA 전략

순환 경제 시대의 ‘친환경’은 더 이상 감성적 구호가 아니다. 정량적 데이터와 과학적 근거가 필수다. LCA는 원료 채굴, 제조, 사용, 폐기, 재활용 전 과정의 환경 영향을 수치화하며, EU는 이를 정책 설계와 인증의 핵심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플라스틱과 배터리 분야에서 LCA는 단순히 재활용 여부가 아니라, 어떤 방식의 재활용이 진정한 환경적 이점을 가지는지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ISO 14040, 14044 국제 표준에 부합하는 LCA는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를 확보하는 핵심 수단이다.
그림 3은 LCA의 4대 단계(목표 및 범위 설정 → 목록 분석 → 영향 평가 → 결과 해석)를 도식화한 것으로, 기업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를 보여준다.

순환 경제 시대의 ‘친환경’은 더 이상 감성적 구호가 아니다. 정량적 데이터와 과학적 근거가 필수다. LCA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핵심 도구로, 자원 채굴부터 제조, 유통, 사용, 폐기 및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의 환경 부담을 수치화하고 비교·평가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순환 경제 체제에서는 단순한 재활용 여부를 넘어서, 어떤 공정과 설계가 실제로 환경적 이점을 가지는지를 입증하는 기준으로 LCA가 활용된다. EU는 ELV 지침, 지속가능한 제품 규제(ESPR), 디지털 제품 여권(DPP) 등 주요 정책에 LCA를 적극 반영하고 있으며, 친환경성은 이제 ‘데이터로 입증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특히, 플라스틱과 배터리 분야에서 LCA는 단순히 재활용 여부가 아니라, 어떤 방식의 재활용이 진정한 환경적 이점을 가지는지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이러한 LCA의 신뢰성과 국제적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ISO는 명확한 수행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ISO 14040은 LCA의 기본 원칙과 프레임워크를, ISO 14044는 구체적인 절차와 요구사항을 정의한다. 이 국제 표준은 평가의 일관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수단이자, 글로벌 시장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평가 체계를 제공한다. EU를 비롯한 주요 국가들이 이를 규제와 인증의 기준으로 채택하고 있는 만큼, 기업에게는 규제 대응을 넘어 시장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그림 3에서 LCA는 네 가지 핵심 단계로 구성된다. 각 단계는 환경 영향을 체계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기업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를 보여준다. 첫째는 분석 목적과 시스템 경계를 설정하는 ‘목표 및 범위 정의’ 단계이며, 둘째는 전 과정의 자원·에너지 흐름을 수집하는 ‘목록 분석(LCI)’이다. 셋째는 온실가스 배출, 자원 고갈, 수질·대기 오염 등 다양한 항목에 대한 ‘영향 평가(LCIA)’가 이뤄진다. 마지막으로 ‘결과 해석’을 통해 전체 평가 결과를 분석하고, 정책적·산업적 개선 방향을 도출한다. 이처럼 LCA는 환경 영향을 과학적으로 진단하고, 지속가능한 제품 설계와 전략 수립을 위한 핵심 기반이 된다.를 해석하고 전략을 도출하는 ‘결과 해석’ 과정을 통해 개선 방향과 정책적 함의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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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자동차 산업, 이제는 소재가 전략이다

지속가능한 미래차, 소재가 바꾼다
ELV 규제는 단순한 ‘폐기물 관리법’이 아니다. 이는 자동차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순환 경제 원칙을 내재화하라는 구조적 선언이다. 이제 플라스틱, 고무, 금속, 배터리, 희귀 자원 등 모든 소재는 회수 가능성과 재활용 효율성을 고려한 상태에서 설계되고 사용되어야 한다.

순환 경제는 산업 전략이다
자원 순환은 환경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산업 생존의 조건이다. 기업은 소재가 어디서 왔고, 어떻게 설계되었으며, 어떻게 회수되는지를 데이터로 증명해야 한다. 이는 규제 대응을 넘어, OEM과의 협력, 소비자의 신뢰 확보,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적 필수 요소다.

결론: 소재가 지속가능해야 자동차도 지속가능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동차를 구성하는 소재들의 순환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완성차의 친환경성도 불완전하다. 따라서 소재 산업이 변화의 중심에 서야 한다. 플라스틱의 재활용률, 고무의 재자원화 기술, 금속의 고순도 회수, 배터리의 희소금속 추적성, 희귀 자원의 공급망 투명성이 바로 미래차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한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소재로는 지속가능한 자동차도 불가능하다. ELV 규제는 이 단순한 진실을 산업계 전체에 통보하고 있다. 지금은 소재 산업이 산업 전환의 중심에 서야 할 시기이며, 이는 위기이자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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