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산업의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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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산업의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전제
이항구 선임연구위원 / 산업연구원
글로벌 자동차산업의 지각변동이 가속화되고 있지만 국내 자동차산업은 파업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여 있다. 금융위기로 인해 구조조정이라는 홍역을 치루었던 구미 자동차업계는 노사가 합심해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능동적이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일본 자동차업계는 합종연횡을 가속화하면서 도요타가 본사 엘리베이터 운행을 중단할 정도로 원가절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 자동차업체들도 자국시장에서의 경쟁지위를 강화하면서 전기자동차의 성능향상에 나서고 있으며, 인도 자동차업체들은 2030년까지 친환경 자동차의 생산 비중을 제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각국 정부도 전기동력 자율주행자동차시대를 맞이해 연구개발 투자 지원과 초기시장 창출을 위해 구매 보조금을 지급하고 관련 하부구조 구축을 확대해 민간투자와 고용을 유도하고 있다. 이처럼 자동차산업의 경쟁환경이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이하에서는 우리 자동차산업의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점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해 보기로 한다.
확산되는 공조파업과 동조파업
“또 파업했어?” 우리 국민들이 자동차산업, 아니 현대․기아차의 파업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파업이 연례 행사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며칠이나 지속될까? 차값 또 오르겠군.” 노사대립의 수준과 상관없이 현대․기아차의 임금은 항상 올랐고 실질적인 피해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오는 소비자들의 자조 섞인 목소리다. 오죽하면 ‘귀족노조’니 ‘노사담합’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올까. 근로자라면 누구나 임금이 오르기를 기대한다. 좀 더 나은 생활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고,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듯이 현대․기아차의 노사분규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소비자와 협력업체의 근로자들이다. 이번 파업으로 현대․기아차의 평균 임금은 1억원을 넘어설 예상이다. 최근의 통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들 중 1억원의 연봉을 받는 근로자 비중은 2.7%에 불과하다. 근로자들의 60%가 평균 3,000만원의 연봉을 받고 있는데, 2인 가구의 1년 생계비가 3,300만원이다. 또한 80%의 가계는 표준 생계비에 못 미치는 평균 4,625만원의 연봉으로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가계의 60%는 혼자 벌어서는 먹고 살기가 힘들기 때문에 맞벌이가 필수고, 80%는 가계 구성원 중 노동이 가능한 사람은 시간제 근무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처럼 일자리 찾기가 힘들면 소위 최저 임금을 못 받더라도 일을 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출이 불안해 내수를 촉진하려고 백약을 처방해도 약발이 듣지를 않는다. 80%의 국민이 근근이 먹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기업 근로자들의 평균 연봉은 6,500만원으로 상위 10%에 속한다. 이러니 청년층 대부분이 대기업에 들어가기를 희망하고, 대기업 취업을 위해 관련 학원에는 수강생이 넘치는데 중소기업들은 일할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이에 따라 고령층 취업자와 젊은층 백수가 늘어나고 있다. 고령층은 박봉이라도 벌어야 하지만 젊은층은 취업 첫 단추를 잘못 끼면 평생 박봉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현대․기아차 근로자들의 항변도 들어봐야 한다. “우리 근로자 중 현대․기아차의 평균 연봉인 9,600만원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내가 고생하더라도 우리 자식은 남부럽지 않게 학원도 보내고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해 주고 싶습니다.” 얼마 전 만났던 현대차 근로자들의 말이 지금도 귓전에서 떠나지 않는다. 자식을 둔 부모로서 요즘 회자되고 있는 수저계급론에 대해 마음 쓰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마음 쓸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일반 소비자들은 자동차산업하면 현대․기아차고, 자동차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 대부분이 현대․기아차 만큼의 연봉을 받거나 임금 격차가 크지 않을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금융위기 전후인 2008년과 2013년 기간 중 현대․기아차와 1차 협력업체의 평균 임금을 비교해 보면 1차 협력업체는 평균 3,949만원에서 5,290만원으로 34.0%가 인상된 반면 현대차는 6,775만원에서 9,458만원으로 39.6%가 올랐다. 인상률에서 별 차이가 없는 듯 보이나 임금 수준을 비교해보면 2008년에는 부품업체의 평균 임금이 현대차의 58.3%였던 것이 2013년에는 55.9%로 하락해 격차가 더 벌어졌다. 2차와 3차 협력업체의 임금 수준이 어떻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기아차와 부품 대기업 노조 뿐 아니라 금속노조 전체가 공조파업과 동조파업에 돌입했으니 국민들의 시각이 곱지 않을 수밖에 없다.줄어드는 국내 투자, 늘어나는 해외투자
국내 자동차산업의 증설투자는 2012년 기아차 광주공장이 마지막이다. 현대․기아차는 1988년 캐나다를 시작으로 터키, 인도(캐나다 설비 이전), 중국, 미국, 체코, 슬로바키아, 러시아, 브라질과 멕시코에 조립공장을 설립했고, 중국에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그 결과 금년 말이면 현대․기아차는 국내 341만대, 해외 538만대 등 전세계적으로 879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국내외 완성차업체들은 소비자의 취향 변화에 신속히 부응해 적기에 차량을 공급한다는 목적 아래 ‘수요가 있는 곳에서 생산한다’는 해외시장 진출 전략을 운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국내 완성차업체의 해외직접투자 이면에는 자동차산업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라는 요인도 작용해 왔다. 최근 선진국 자동차산업에서는 비용절감 차원에서의 해외직접투자가 둔화되고 있는 반면 해외로 나갔던 업체들이 돌아오는 등 자국내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 협력적인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생산성 향상과 합리적인 임금인상을 통해 자국내 생산이 더 유리해 졌기 때문이다. 선진국 정부도 자국내 투자 기업들에 대해 세제 금융 지원과 근로자 재교육 훈련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선진국 정부가 자동차산업의 투자와 고용을 촉진하고 있는 이유는 연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상대적인 고임금이 중산층 확충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편 금융위기 당시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했던 미국, 독일과 일본의 자동차 생산은 일시적으로 감소했다가 증가하고 있으나, 극심한 노사대립을 겪었던 프랑스, 이태리와 스페인의 자동차 생산은 2012년~2013년까지 감소한 후 미미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국내 완성차업계의 금년 상반기 생산은 전년 동기비 5.4%가 감소한 219만 5,843대에 그쳤다. 국산차 내수는 개별소비세 인하로 11%가 증가한 반면 수출이 13.5%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해외생산 역시 1월~5월 중 181만 5,084대로 전년 동기비 0.5%가 감소했다. 최근 완성차 수출이 급감하면서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섰다는 중국내 현대․기아차의 생산은 동 기간 중에 72만 4,068대에서 69만 995대로 4.6%가 감소했다. 대중국 완성차수출이 급감한 이유는 현대․기아차가 수익제고를 위해 수출을 현지생산으로 대체하고, GM과 르노가 한국GM과 르노삼성이 수출하던 차종을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자동차 수요둔화 속에 국내 완성차업체의 글로벌 판매 부진이 지속되고 있어서 부품업체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전망이다.음지 속의 땀 냄새와 사라지는 일자리
자동차산업이 불안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2년 전 여름에 방문했던 수도권 1차 협력업체 공장을 생각해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분진과 열기로 인해 에어컨 가동이 힘들어 대형 선풍기를 돌리고 있었던 생산 라인에 좀 더 가까이 가서 본 근로자는 외국인들이 태반이었다. 3D 작업은 대부분이 외국인 몫이기 때문이다. 지방의 2차 소규모 협력업체에 갔더니 사무실에는 사장님과 사무원 한명 뿐이었다. “제가 은행 일부터 생산 라인까지 다 돌보고 있습니다.” 소규모 생산라인에는 외국인 근로자가 대부분이었다. “소통은 손짓 발짓 다해 가면서 하고 있지만 계속 쓸 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친구들이 정보는 밝고 현장에는 사람이 없다보니 어디서 조금만 더 준다면 보따리 싸 가지고 나갑니다. 계속 있는 친구들도 취업 기간 제한으로 인해 쓸만해 지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 방문했던 수도권 2차 협력업체들에는 젊은층이 돌아오고 있었다. 사무실 옆에는 마치 북 카페와 같은 공간이 있었고 공장도 말끔했다. “이 정도는 해 놔야지 젊은 사람들이 와요. 그런데 야근이나 주말 근무는 기대할 수 없어요. 서울이 가까우니 그나마 젊은 친구들이 오는 거예요. 평일 6시 이후와 주말에 서울에 가서 여가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좋아요.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야근이나 주말 특근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죠.”아래로부터 찾아오고 있는 위기
지난해 우리 부품업계의 매출은 완성차 내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는데도 불구하고 완성차업체에 대한 납품이 6.8% 감소하면서 전년비 3.7%가 떨어졌다. 자동차부품(MTI 742) 수입이 3.5% 감소한 것을 고려할 때 완성차업체의 자체 조달이 증가하거나 기존의 부품분류에서 빠져있는 품목의 수입이 증가하면서 국산품을 대체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12.2%가 감소한 KD 수출1)을 포함할 경우 부품업체의 매출 감소 폭은 더 크다고 평가할 수 있다. 매출 감소 속에 국내 완성차업체가 수직계열화를 통해 주요 부품을 조달하면서 부품산업의 총매출에서 차지하는 계열 부품업체의 비중은 2009년의 40.2%에서 2015년에는 48.8%로 증가해 그만큼 비계열 부품업체들의 사업영역이 줄어들고 있다. 금년에도 부품업체의 매출은 완성차업체의 내수, 수출, 해외생산 모두가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어 감소세가 지속될 전망이다. 현대․기아차의 금년 상반기 판매는 전년 동기비 2.4% 감소한 385만 2천대로 지난해에 이어 금년에도 판매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판매 부진이 내년까지 이어질 경우 현대․기아차의 공급과잉 문제가 새롭게 대두될 것이며, 원가 절감을 위한 글로벌 소싱의 확대도 예상된다. 외국계 완성차업체들도 금번 파업으로 인해 임금이 상승해 원가 부담이 가중될 경우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의 조정 차원에서 국내 생산물량을 축소할 전망이다. 부품업계로서는 고난의 시절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판국에 자동차산업의 공장가동이 파업으로 인해 멈추어 섰으니 부품업체 경영진이나 근로자들은 폭염 속에 한숨만 내쉴 수밖에 없다. 파업이 종료되더라도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할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또한 당분간 내수시장에서의 부품업체간 출혈경쟁도 불가피할 예상이어서 자칫 자동차산업 공급망의 단절로 인한 자동차산업 전반의 생산차질도 우려된다. 물론 자동차부품업체 모두가 위기에 빠져 있지는 않다. 혁신역량을 보유한 업체들은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성장성, 재무건전성, 수익성과 혁신성을 바탕으로 국내 1차 협력업체들의 수출 역량을 평가한 결과 150여개 업체만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 부품업체들이 인수합병을 통해 대형화를 추진하고 있고,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해 혁신역량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자동차산업의 전장화와 경량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창업과 사업전환을 통해 자동차부품산업에 진입하는 업체들도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도 녹녹치 않은 상황에서 자동차산업의 거듭된 노사분규가 국내 자동차산업의 투자재원을 고갈시켜 일자리 자체를 없애 버리는 결과를 낳을까 우려된다.한국형 노사관계 모델 창출을 위한 전제
자동차 노사와 정부는 지난 수십 년간 노사관계의 개선을 위해 머리를 맞대어 왔다. 그 과정에서 일본, 독일, 미국, 프랑스, 스웨덴, 이태리와 스페인 등 선진국의 노사관계 변화를 벤치마킹해 왔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가별 사회․문화․제도적인 차이는 차치하고 노사분규의 원인과 배경 및 해법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분석이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의 사례는 고전이 되었고, 미국과 유럽, 특히 유럽의 기업문화는 북구, 독일, 프랑스, 남유럽이 상이하며, 자동차산업의 거래와 지배 구조도 다른 상황에서 단순 사례 분석만으로는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근래 미국 자동차산업의 임금이 하락했고, 이태리와 스페인이 노사관계의 유연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했으며, 프랑스도 법정근로시간을 현재의 35시간에서 예외적인 경우 46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분석과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기아차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이 세계 최고 수준이니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한국형 노사관계 모델의 창출을 위해서는 정확한 진단을 위한 통계분석과 사례분석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근거가 약한 정보의 범람은 문제의 해결은커녕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는 미국과 독일 자동차산업의 임금 비용 분석에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정확한 데이터에 근거한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원활한 대화와 소통을 활성화하고, 중장기적이자 다양한 시각에서 국내 자동차산업의 노사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즉, 선진국의 우수 노사관계 개선과 구조개편 사례에 대한 심층 분석과 국내 자동차산업의 지배, 생산, 거래, 임금, 고용구조 등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통해 노사정 공동으로 해법을 내어 놓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빨리빨리’ 문화를 바탕으로 단기간 내에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이자 수출국으로 성장했지만 한국형 노사관계 모델의 개발을 위해서는 ‘급하면 체한다’와 ‘기본에 충실하자’는 격언을 새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자료 : 산업연구원, Lazard & Roland Berger
주 : 세계는 EBIT(Earning before interest and tax), 한국은 영업이익률, 2014년 세계는 추정치
주1) 지난해 MTI 742 기준 수출은 4.1% 감소. KD 수출은 전년비 12.2%, 4억 8158만 달러가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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