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와 세계 자동차부품산업 재편
정희식 연구위원 /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자동차 수요의 극심한 위축으로 자동차산업과 더불어 세계 자동차부품산업의 침체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GM과 크라이슬러의 파산보호 신청으로 미국 부품업체들의 경영실적 악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세계 3위 부품업체인 델파이의 적자가 지속되고 있으며, 리어, TRW, 어빈메리터 등도 지난해 4분기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1차 협력사 기준으로 올해 들어 비스티온을 포함해 6개 업체가 파산보호 신청(2008년은 8개 업체)을 했으며, 2009년 미국 부품업체 영업손실 규모가 237억달러까지 예상된다. 미국 부품업계는 경영정상화를 위해 향후 4년간 335억달러의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올해 세계 자동차시장 위축이 심화되고 있어 부품업체들의 위기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러한 전대미문의 위기에서 생존하기 위해 주요 부품업체들은 공장 폐쇄, 인원 감축 등 특단의 대책을 마련 중이다. 특히 경영 위기에 직면한 미국 부품업체들이 매물로 나오면서 부품업체간 합종연횡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실제로 올해 4월 중국 부품업체 베이징웨스트가 델파이의 브레이크와 서스펜션 사업 부문을 인수한 것은 업계 재편의 신호탄으로 보여진다.
이 글에서는 부품업체들의 위기 극복 전략을 선진권과 신흥권으로 구분해서 살펴보고, 미국발 부품업체간 합종연횡 움직임을 통해 향후 세계 부품업계의 재편 방향을 전망해 보고자 한다.
주요 부품업체 실적 급격 악화
미 빅3의 주문 급감으로 미국 부품업체들의 실적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델파이, 존슨컨트롤스 등 미국 부품업체들은 매출액이 감소했으며, 영업이익도 대부분 적자로 전환되었다. 특히 지난해 4분기 실적만 보면 델파이의 경우 40%나 매출이 감소했으며, 적자 규모도 무려 10억달러에 달했다. 그밖에 아메리컨 엑슬은 지난해 4분기 매출액 34% 감소와 11억달러 적자를, 리어는 동 기간에 매출 33% 감소와 6억 9000만달러 적자를 각각 기록했다.
<주요 부품업체 2008년 실적>
하이브리드카 전기자동차 배터리 시장 전망 현황 표구분 | 업체명 | 매출액 | 영업이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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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업체(억달러) | 매그나 | 237.0(-9.1) | 3.3(-71.1) |
존슨컨트롤스 | 219.5(-3.9) | 6.2(-37.0) |
델파이 | 180.6(-19.0) | -14.8(적자 지속) |
리어 | 135.7(-15.2) | -6.0(적자 전환) |
TRW | 149.9(2.0) | -4.7(적자 전환) |
비스티온 | 95.4(-15.3) | -4.0(적자 확대) |
데이나 | 80.9(-7.2) | 3.5(흑자 전환) |
어빈메리터 | 68.7(5.0) | -1.8(적자 전환) |
일본업체(억엔) | 덴소 | 31,150(-22.6) | -470(적자 전환) |
아이싱 정기 | 22,000(-11.5) | -110(적자 전환) |
캘소닉 칸세이 | | -280(적자 전환) |
F-TECH | | 11(-85.0) |
유럽업체(억유로) | 보쉬 | 461(-0.4) | 11.5(-69.7) |
컨티넨탈 | 242.4(45.8) | -11.2(적자 전환) |
자료 : Fourin
주 : 1) ( )는 전년대비 증가율(%)임
2) 컨티넨탈의 2008년 매출액 증가는 지멘스VDO와의 합병에 의한 것임
3) 일본업체와 유럽업체는 당 연구소 추정치임
더욱 놀라운 사실은 도요타 그룹 계열 9개 부품업체 모두가 2009년 3월 회계연도 결산에서 적자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세계 1~2위를 다투는 덴소는 1978년 이래 처음으로 470억엔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며, 아이싱정기, 도요타방직 등도 매출 감소와 적자를 보였다. 닛산 계열의 캘소닉 칸세이도 280억엔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 부품업체들도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을 받아 이익 규모가 크게 축소되거나 적자로 전환되는 위기를 맞고 있다. 세계 최대 부품업체인 보쉬는 2007년까지 8%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지만, 지난해에는 이익률이 2.5%까지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지난 2007년 12월 지멘스VDO 인수를 통해 세계 4대 부품업체로 급부상한 컨티넨탈도 순부채가 105억유로까지 10배나 급증함에 따라 금융비용이 크게 증가하면서 2007년 10.2억유로 흑자에서 지난해 11.2억유로 적자로 실적이 급전직하했다.
선진시장 부품업체의 위기 대응
매출 급감과 적자 확대의 위기에 직면한 선진시장 부품업체들은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선진 부품업체들의 구조조정 내용을 살펴보면, 경영 실적 악화가 심각한 미국 부품업체들이 가장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주가가 2센트까지 급락해 상장 폐지까지 결정된 비스티온은 올해 상반기 중 사무직원을 총 8000명 감원하고, 생산직도 주 4일 근무제를 추진함으로써 인건비를 20% 감축할 계획이다. 2007년 12월에 파산보호 신분에서 벗어난 페드럴모굴도 경기 침체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경영 재건책 ‘리스트럭처링 2009’를 발표했다. 그 계획에는 전 세계 공장의 종업원 수를 26%(약 8600명) 줄여 연간 8000만 달러의 인건비 절감을 추진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브레이크 사업 부문을 다른 사업부문에 집약하여 5개 사업부를 4개로 줄일 계획이다. 이를 위해 북미 사우스 캐롤라이나 공장을 폐쇄했으며, 영국 등 해외 공장을 포함해 9개 공장을 폐쇄할 것이다. 세계 7위 부품업체인 존슨컨트롤스도 지난해 4분기 6억달러의 손실을 기록함에 따라 전 세계 10개 공장의 폐쇄와 1만 1000명 이상의 감원을 계획 중이다.
일본 부품업체들도 공장 폐쇄, 인원 삭감 등을 통해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구조조정을 강화 중에 있다. 자동차 램프 제조업체인 이치코공업은 일본 내 2개 공장을 2010년 2월말까지 폐쇄할 것을 결정했으며, 다른 부품업체들도 재고 축소를 위해 최대 50%까지 감산을 추진하고 있다. 아케보노 브레이크는 위기에 대비한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동경 본사의 토지 및 건물의 일부 소유권을 매각할 계획이다.
보쉬, 발레오 등 유럽 부품업체들도 생존을 위해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다. 보쉬는 올해 2월부터 독일내 공장의 조업시간을 단축해 10% 감산을 실시하고 있으며, 인도 등 해외 공장의 조업 중지도 추진하고 있다. 발레오는 올해 희망퇴직를 통해 약 5000명을 감원할 계획이며, 프랑스 내 주요 공장의 조업 중단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많은 부품업체들이 생산, 구매, 재고관리 등에서 원가절감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의 아이산공업은 원가절감을 위해 자동화 시설의 설치 공간을 축소해 설비 간소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일본 국내 뿐만 아니라 중국의 설비 개발 인력을 증강해 공장 개선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클라리온은 네비게이션 관련 부품의 조달처를 30% 이상 줄여 부품업체당 조달 규모를 늘려 연간 10억엔의 원가절감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KYB공업도 2012년까지 집중 구매를 통해 부품 조달처를 현재 970사에서 320사로 70% 이상 줄여 비용절감을 추진할 계획이다. 팔택(FALTEC)은 부품 재고 등 생산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연간 1억엔의 원가절감을 추진 중에 있다. 그밖에 일본 부품업체들은 개선 활동을 통한 원가절감 활동을 촉진할 목적으로 공장 마다 개선 활동 전문팀 또는 개선 지원실을 설치하여 운용할 계획이다.
미국과 유럽 부품업체들도 생산 효율 체제 개선과 신흥시장 부품 조달 확대를 통해 원가절감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파산보호에서 벗어난 데이나(Dana)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북미 지역 공장들의 생산 체제를 일제히 점검, 비용 절감 아이디어를 발굴해서 전사적인 활동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발레오는 2010년까지 관련 부품의 조달 규모를 최대 70%까지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 지역에 집중시킴으로써 원가절감 효과를 극대화시킬 계획이다.
한편 매그나(Magna)는 GM 오펠의 인수 우선 협상자로 선정됨으로써 부품업체를 넘어서 완성차 사업 영역까지 진출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추진 중이다. 매그나는 현재 러시아의 최대 로컬 완성차업체인 아우토바즈와 제휴를 맺고 있어, 만약 오펠 인수에 성공할 경우 300만대 이상의 완성차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신흥시장 부품업체의 위기 대응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 부품업체들은 미국 부품업체의 위기를 활용해 글로벌 부품업체로의 도약을 추진 중에 있다. 우선 경영 위기에 빠진 미국 부품업체를 인수해 단 기간내에 기술 및 제품 개발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4월 중국 북경시 주도 컨소시엄인 베이징웨스트는 델파이의 브레이크와 서스펜션 사업 부문을 1억달러에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미국, 프랑스 등에 위치해 있는 8개 공장과 5개 연구개발 센터를 확보함으로써 선진 업체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추가로 델파이 전체를 총 60억달러에 인수하는 협상도 진행 중에 있다. 북경시는 델파이의 핵심 사업인 엔진시스템, 안전시스템 등의 사업을 3년 내에 모두 인수할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의 지리자동차도 호주의 변속기 전문 부품업체 DSI를 인수하였다. 또 인도의 한 부품업체는 GM, 포드, 폭스바겐 등에 리어 미러를 공급해 온 영국 부품업체 비지오코프를 인수했다.
이러한 신흥시장 부품업체의 M&A 추진은 세계 자동차부품산업의 경쟁 구도에 큰 변화를 초래할 전망이다. 선진 부품업체 인수를 통해 기술력을 확보한 신흥시장 부품업체들이 원가경쟁력을 무기로 시장 개척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즉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갖춘 글로벌 부품업체가 새롭게 탄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1990년대 이후 전 세계 800여개 부품업체들이 중국에 진출하면서 중국산 부품의 해외 수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00년 15억달러에 불과했던 중국의 자동차부품 수출이 2005년에는 10배가 증가한 152억달러로, 그리고 지난해에는 331억달러까지 늘어난 것이다.
<중국의 부품 수출 수이>
주 : 산업연구원 및 주요 언론사 발표 자료 취합
또한 과거 범용 부품에만 머물었던 신흥시장의 부품 수출이 최근 엔진계, 섀시계 등 고부가가치 영역까지 점점 확대되고 있다. 일본 마크라인 조사에 따르면 중국에 진출해 있는 일본계 및 유럽계 부품업체들 뿐만 아니라, 로컬 부품업체들도 엔진, 피스톤, 서스펜션 등을 수출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고급 기술 분야인 연료 분사 장치, 브레이크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부품들을 자체 제작해서 완성차업체에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도의 로컬 부품업체들은 트랜스미션, 쇽업쇼버 등 고부가가치 부품까지 공급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부품업계 재편 전망
대규모 재편이 시작된 완성차업계처럼 세계 부품업계도 대규모 재편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2000년대 이후 세계 10대 부품업체의 위상 변화를 살펴보면 대규모 재편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2000년 출범 이후 부동의 1~2위를 유지하던 델파이가 2005년 10월 파산보호 신청 이후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다가 지난해에는 7위까지 추락하였다. 올해는 미 빅3의 급격한 생산 축소 조정으로 10위권 수준까지도 하락할 수 있다. 세계 4대 부품업체 중 하나였던 비스티온은 지난해 18위까지 떨어졌다. 또 다른 미국의 거대 부품업체인 존슨컨트롤스도 세계 5위에서 지난해 6위로 하락하였다.
<세계 부품업체 위상 변화>
자료 : Automotive News 발표(OEM 공급액 기준)
주 : ( )내는 매출액(억달러)임
반면 일본과 유럽 부품업체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일본의 덴소는 2002년 세계 3위에서 2007년부터 2위로 올라섰고, 보쉬는 2004년부터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컨티넨탈은 2002년 세계 22위 규모에서 지멘스VDO를 인수해 지난해에는 3위까지 급상승 하였다. 또한 ZF는 세계 14위에서 9위로, 포레시아는 10위에서 8위로 순위가 상승했다.
앞으로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 부품업체들이 미국 부품업체 인수에 성공해서 해외 시장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설 경우 세계 100대 부품업체까지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거대 부품업체간 인수합병을 통해 컨티넨탈처럼 부품업계의 새로운 강자가 나타날 수도 있다. 또 다른 재편 방향의 축으로는 매그너와 같이 완성차업체 전체 또는 일부 공장 인수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Semi-완성차업체가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흥시장 부품업체의 급성장, 부품업체간 M&A를 통한 신강자 부상, 완성차업체 M&A를 통한 신종 기업 출현 등 여러 가지 변수들을 고려할 때 세계 부품업계의 재편 방향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현재까지 나타난 미국 부품업계의 축소 조정을 고려한다면 세계 부품업계는 과거 미국, 일본 및 유럽의 3강 축에서 일본과 유럽의 대형 부품업체와 한국, 중국 등 신흥 부품업체들이 포함된 보다 다극화된 경쟁구도가 전망된다. 이로 인해 세계 부품업계는 거대 부품업체들의 위상이 약화되는 가운데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갖춘 부품업체들이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과거에는 기술과 품질이 부품 공급자 결정에서 핵심 결정 변수였다면, 앞으로는 기술/품질 외에 가격이 더 큰 결정 변수로 부품 공급자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부품업계 재편 방향을 정확히 예측하려면 미국 부품업체들의 위상 변화와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 부품업체들의 움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 부품업계 재편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