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산업변화와 동반성장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KAICA
댓글 0건 조회 95회 작성일 12-01-06 12:21

본문

산업변화와 동반성장

송창석 교수 송창석 교수 / 숭실대학교 경영대학

1. 공생의 기업생태계

21세기의 경쟁은 한 기업이 다른 기업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공급자, 조립업체, 보완재생산자, 유통업체들이 뭉친 기업생태계가 다른 기업생태계와의 싸움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한 기업이 모든 혁신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업생태계적 사고는 더욱 절실하다. 기업생태계간 무한경쟁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의 능력과 전략뿐만 아니라 기업생태계 파트너들의 능력 또한 중요하다. 나와 파트너와의 관계는 플러스/마이너스의 관계가 아니라 곱하기의 관계이다. 내가 아무리 잘 하더라도 파트너의 투입이 0이라면 나의 성과도 0 이상이 될 수 없다.
AOL과 야후(Yahoo)!는 1990년대 후반 인터넷 사업 분야에서 전성기를 구가하였으며 광범위한 고객기반을 발판삼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1990년 후반기 야후!와 AOL은 기업생태계에 대해 전통적인 접근을 고수하였다. 즉, 우선 인터넷붐에 편성하여 AOL이나 야후!는 자신의 가입자 즉, 고객자산을 무기로 파트너들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이었으며 이들은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자신의 파워에 상응하는 최대의 대가를 파트너들에게 요구하였다. AOL과 야후!의 이러한 단기적인 접근은 수익모델을 즉각적으로 실현할 수 없는 닷컴 파트너들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인터넷 세계의 각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수많은 파트너들의 입지가 약화되자 AOL과 야후!를 둘러 싼 생태계는 쇄락하였고 이들의 리더 또한 위기를 맞게 되었다.
AOL이나 야후!와는 달리 이베이(eBay)는 파트너들과 함께 효과적으로 가치를 창출하고 공유하려고 노력했다. 이베이는 거래액의 7%를 넘지 않는 커미션을 부과하였는데 이는 대부분의 소매업자들이 부과하는 30~70% 마진보다 아주 낮은 수준이었다. 이러한 거래조건은 이베이의 파트너들이 당장 수익을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으며 이는 다시 파트너들의 몰입과 혁신을 촉진하여 이베이 생태계의 급성장을 이루어냈다. 야후!는 그 후 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을 재정비하여 재기할 수 있었지만 세계 최대의 인터넷 기업이었던 AOL은 최후를 맞게 되었다.

2. 산업변화와 혁신모델의 변화

서구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의 대중소기업관계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장기적 협력관계가 핵심이다. 이러한 관계를 네트워크관계라고 부른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에 이은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장기적 협력관계를 기초로 하는 한국의 기업생태계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과거의 대중소기업간 협력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으며 기업환경의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공생발전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다만 어떠한 환경에서도 기업간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의 확보이다.
기업간 협력패턴은 환경변화 속도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기술변화속도에 따라 혁신모델이 달라지는데 기술변화가 느린 세계에서는 닫힌 혁신 모델이 기술변화가 빠른 세계에서는 열린 혁신 모델이 적합하며 기업간 협력모델 또한 달라져야 한다. 기술변화가 느린 세계에서는 기존의 닫힌 혁신모델 또는 제한적 열린 혁신모델에 따라 기존의 대중소기업 관계의 이슈에 접근할 수 있다. 기술변화가 빠른 세계에서는 열린 혁신 모델을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벤처기업과 대기업간의 동반성장 문제는 열린 혁신 모델로 풀어야 한다.
수직적 통합관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한국의 자동차산업도 현재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구매자-공급자 관계는 공급자의 신제품개발 참여, 공급자와 조립업체간 다중 접점, 승인도방식 설계, 엔지니어 파견 등을 통해 비교적 폐쇄적인 시스템을 유지하였다. 반면 최근에는 열린 혁신, 경쟁자간 공동 개발(플랫폼 등), 글로벌 부품업체의 등장과 영향력 증대, 모듈화의 진전 등으로 공급사슬구조가 개방되는 동시에 경쟁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연속선상에서 중소기업 또는 공급자를 바라보는 시각도 두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다. 첫째, 단순 공급자로서의 중소기업으로서 수직적 계열화의 하위 구성원으로 여겨진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발전을 추구해 온 한국의 경우 이러한 관점이 지배적이며 동반성장을 위한 상생협력 이슈에서도 수직적으로 계열화된 공급사슬 내에서 대중소기업간 관계가 논의의 초점이 된다. 두 번째 혁신의 원천으로서 중소기업을 보는 시각이 있다.
기존에 거대기업의 연구소가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함에 따라 급격한 혁신이나 스피디한 혁신을 위한 중소기업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전통적인 대중소기업간 관계모델이 맞지 않으며 열린 혁신 모델이 적용되어야 한다.

3. 대중소기업간 관계의 미스매치

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중소기업의 역할 변화를 감안하면 대중소기업간 관계에서 두 가지 미스매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림1 참조). 지금까지 자동차산업의 참가자들은 절묘한 호흡으로 멋진 댄스를 이끌어내어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글로벌리더로서 자리매김하였다. 앞으로도 대중소기업이 멋진 춤을 보여줄 수 있는가는 이들 두 가지 미스매치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달려 있다.
< 그림 > 대중소기업간 협력의 방향과 미스매치

첫 번째 미스매치는 위치의 미스매치이다.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대기업은 혁신주도형 경제에 진입했으나 상당한 중소기업들은 아직 요소투입형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성장을 위해 3무(사람, 돈, 기술)를 해결하는데 관심을 가지며 정부의 중소기업정책도 투입형 정책이 위주가 된다. 이로 인해 대기업이 상생협력을 통해 중소기업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것과 중소기업이 상생협력을 통해 대기업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것이 차이가 있어 동반성장/상생협력이 효과가 떨어진다. 결국, 중소기업은 아마추어, 지원의 대상으로만 인식되고 만다.
두 번째 미스매치는 인식의 미스매치이다. 현재 상당수의 공급자들은 혁신주도형 단계에 이미 진입하였으며 이들은 열린 혁신의 주체이자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기업들은 과거에 비해 내부 R&D에서 과감히 탈피, 외부의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적극 활용하여 자사의 혁신으로 연결하는 열린 혁신을 채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기업들은 자기중심주의에 빠져 파트너의 아이디어나 기술을 경시하고 이들은 단순공급자 이상으로 대우하려 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기술 아이디어나 특허 등을 둘러싸고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대기업은 혁신주도형 단계에 도달한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잘하는 기업과 못하는 기업을 구분하여 대우를 차별화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잘하는 기업과 못 하는 기업의 요구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못하는 업체는 미스매치1의 해소에 중점을 두어야 하며 잘하는 업체와의 관계에서는 미스매치2의 해소에 노력해야 한다.

4. 미스매치 해결을 위한 기업생태계 모델

독일의 노트붐 교수는 미국과 독일, 일본의 기업간 관계를 비교하면서 미래에는 이들 두 시스템을 통합한 제3의 길을 모색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Nooteboom 2000).
1) 이를 전문용어로 NIH (Not Invented Here) 신드롬이라 한다.
위 그림에서 보면 독일이나 일본의 기업간 관계를 나타내는 시스템B는 혁신의 확산을 빠르게 하고 점진적 혁신을 촉진하지만 견고하고 장기적인 기업간 네트워크는 유연성이 떨어져 급격한 혁신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반면 미국식의 시스템A는 기업간 관계가 가변적이라 급격한 혁신에 유리하다.
시스템 A에서 행동수단은 육성전략이 아닌 교체전략이다. 파트너가 불만족스러우면 파트너에게 개선을 권고하는 대신에 파트너를 교체하고, 대출을 회수하고, 지분을 팔고, 사람을 해고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 반면 시스템 B는 상대방에 불만족할 때 당사자는 이를 표명하고 숙고와 재협의를 통해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한다.
동태적 및 정태적 의미에서 효율적이며, 국가의 제도적 상황에 적합한 제3의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제3의 길은 시스템 B로부터 심층적 협력, 특정적 투자, 차별적 제품 및 집중적 정보교환을 채택하였으며 시스템 A에서 더 큰 유연성과 다중성을 채택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향후 미국식의 계약중심의 복수관계모델과 독일, 일본의 배타적 관계모델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제3의 길을 모색하여야 하며 이는 관계적 특성과 복수관계를 동시에 추구하는 모델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전반에 고차원의 신뢰가 고양되어야 한다. 신뢰는 상생문화의 필수조건이다. 단 이러한 논의는 중소기업들이 역량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도 주로 B타입을 유지하였지만 IMF 구제금융,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B타입에서 A타입으로의 변화가 감지된다. 경쟁입찰의 증가나 부정에 대한 원천봉쇄로서 공정경쟁이 강조되고 있다. 중소기업은 여전히 B타입을 희망하지만 견고한 수직적 관계가 느슨한 복수의 수직적 관계로 변화하는 것은 대세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동반성장정책의 딜레마가 있다. 룰(제도)에만 치중할 경우 시스템B에서 시스템A로의 변환이 가속화될 위험이 있다. R&D 협력과 해외동반진출 강화를 통해 제3의 길이 지배적인 동반성장문화가 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5. 기업생태계 발전을 위한 제언

제3의 길을 가고자 할 때 가장 큰 고민은 신뢰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기존의 장기적, 배타적 관계에서 복수의 경쟁관계로 이전할 때 파트너에 대한 신뢰는 떨어질 수 밖에 없으며 어떤 안전장치 즉, 중재자를 필요로 하게 된다. 일본의 경우 은행이나 종합상사가 중재자의 역할을 하였으며, 독일에서는 기술기관 및 은행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중재자는 저당물의 수호자, 정보 유출에 대한 필터, 신뢰구축의 중개자로서 기능을 하며 적합한 시기에 가장 덜 파괴적으로 관계가 해체되도록 도움을 준다. 따라서 중재자는 관련 분야에서 전문성, 협력에서 중요한 요소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이들 요소들을 다룰 스킬 등이 필요하며 잠재적 파트너들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중재자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그만 하고 누가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인지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