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역할이 부각되는 자동차 산업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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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역할이 부각되는 자동차 산업정책
곽용선 연구위원 /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경제 살리기’를 핵심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새정부가 출범한 지도 두 달 남짓이 경과하였다. 특히 ‘친기업적(business friendly)’ 환경의 조성을 새정부 경제정책의 주요 목표로 정하면서, 업무보고 형식으로 각 부처별로 발표된 세부 정책의 내용 역시 기업하기 좋은 여건 조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예를 들면 경제정책과는 크게 관계가 없어 보이는 법무부의 올해 업무계획 역점이 ‘법질서 확립과 경제 살리기’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처를 막론하고 정부의 정책 의지는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 활성화는 투자 확대와 고용 창출의 여부에 달려 있는데, 투자와 고용의 주체가 기업이라는 점에서 경제 살리기의 핵심 역할을 기업이 담당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친기업적 정책을 통해 경제 회복의 실마리를 푼다는 새정부의 정책 방향 설정은 틀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리하면 미시정책의 측면에서 정부는 경제 회생을 위해 모든 정책적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새정부 출범 이후 거시적 경제 여건은 계속해서 불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의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는 와중에 세계경제의 또 다른 축인 중국은 지난 3월에 끝난 전인대에서 긴축정책의 강화 방침을 재확인하였다. 게다가 원유를 비롯한 국제 원자재 가격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특히 수입 원자재를 이용해 중간재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의 원가 부담이 심화되고 있다. 즉 우리나라의 양대 수출시장인 미국과 중국의 경기가 둔화되는 가운데 생산비 부담은 가중되고 있어, 기업들은 안팎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최근의 글로벌 경제 상황이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찾아오는 스태그플레이션 발생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국내 거시정책의 방향을 일관되게 설정하기가 어렵다는 데에 있다.
요컨대 미시적인 관점에서 정부의 정책은 타당성을 가지고 비교적 일관되게 추진되고 있으나, 거시적인 측면에서는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래서는 새정부가 당초에 의도하였던 기업 투자와 고용 확대를 통한 경제 살리기가 제대로 이루어질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미시정책과 거시정책간의 괴리를 메워주고 새정부의 경제 살리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정책적 수단이 필요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로부터 산업정책의 역할이 확연해진다. 특히 잠재성장률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 성장 동력산업의 발굴 및 육성 여부가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산업정책의 중요성은 더욱 막중해진다.
일각에서 산업정책이 경제정책에서 차지하는 역할이나 비중이 미시정책이나 거시정책에 비해 미미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산업정책의 유효성에 관한 논란은 1970년대부터 주로 선진국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는데, 특히 1980년대 이후 미국과 영국에서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산업정책의 무용성을 주장하는 다수의 논의가 진행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과거 고도성장기에 시행되었던 산업정책의 효과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산업정책에 대한 비판론은 2000년대 들어 선진국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산업정책을 활용하는 일본의 경제 부활, 정부 정책이 경제를 주도하는 중국, 인도 등 후발 개도국의 경이적인 경제성장 등으로 더 이상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즉 최근에는 국가마다 처한 실정에 맞는 산업정책이 필요하다거나, 특히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는 선별적 산업정책마저도 유효하다는 주장이 다시금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요컨대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산업정책이 산업의 발전과 그를 통해 국가경제 성장에 기여한 성과는 시대와 국가에 관계없이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자동차산업의 경우에도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발전 과정 전반에 걸쳐서 산업정책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음을 알 수 있는데, 두 가지 측면에서 그 필연성을 찾을 수 있다. 하나는 미래 자동차 기술 확보를 둘러싼 국가간 경쟁 측면에서이다. 전통적으로 산업정책을 중시하는 일본은 물론, 산업정책에 대해 소극적이던 미국도 자국 업체들의 위기에 직면하여 최근에는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하는 연방정부 주도의 국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중국과 인도는 자동차산업 후발국으로서의 불리한 여건 해소와 미래 기술력 확보를 일순간에 이루고자 국가 차원의 지원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기술 융합의 진전에 따른 정책적 대응의 필요성이다. 즉 융합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제품 및 산업의 출현은 선별적 산업정책의 유효성은 감소시킨다. 대신 막대한 자원 투입에 따라 증대하는 리스크를 상쇄할 수 있도록, 미개척 융합산업의 육성과 발전을 도모하는 산업정책의 새로운 과제가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 자동차산업의 발전 전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를 한국 자동차산업의 발전 단계에 따라 시기적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자.
우리나라에서 자동차산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본격적인 자동차 생산 단계에 들어가는 1960년대 이후부터 시작된다. 이는 후발 개도국이 선발국을 추격하기 위해 흔히 활용하는 불균형 성장전략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1962년의 ‘자동차공업 육성 5개년 계획’과 1969년의 ‘자동차국산화 3개년 계획’ 등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는 내수시장 규모의 절대 부족 속에 국산화율이 20%에 지나지 않는 등 국내 업체들이 자체적인 기술 역량을 보유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자동차 산업정책은 무리하게 독자적인 기술력 및 모델을 확보하기 보다는 기술 습득 능력을 최대한 제고시키는 데에 주안점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한국 자동차산업은 기술 제휴를 맺고 있던 선진 업체들로부터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하는 KD 조립 단계에 진입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고유모델 개발을 위한 초석을 닦았다고 하겠다.
1970년대 들어서는 정책의 수준이 한 단계 심화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시기의 대표적인 정책이 1973년 발표된 ‘장기 자동차공업 진흥계획’이다. 이 정책의 핵심 목표는 고유 모델의 개발을 통해 수출산업화를 도모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 자동차산업은 종전의 단순조립 수준에서 제조 수준으로 질적인 도약을 이루게 되었으며,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최초의 국산 모델인 ‘포니’의 개발과 해외시장으로의 수출 개시라고 하겠다. 한국 자동차산업이 독자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1980년대는 자동차 산업정책의 방향 전환이 일어난 시기였다. 즉 1981년 2월 ‘자동차공업 합리화 계획’(이하 2.28 조치)과 같이 인위적인 라인업 조정 정책이 시행되다가, 1987년 2.28 조치의 해제로 전차종 생산 자유화와 자동차 수입 자유화 프로그램 발표로 업체간 경쟁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는 국내 업체들이 어느 정도 독자적인 기술 역량을 보유하게 됨에 따라 직접 지원을 통한 육성정책 방침에서 간접적인 지원을 위한 여건 마련으로 정책 방향이 서서히 전환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국내 업체들은 대량 생산 체제를 구축하는 동시에 수출 전략 차종의 개발을 통해 본격적인 수출산업화를 이루었다.
1990년대는 직접적인 지원 대신 간접적인 지원으로 자동차 산업정책의 방향 선회가 본격화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이는 1990년대 이후의 글로벌 경영환경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1995년 WTO 체제의 개막은 글로벌 경제를 공통 규범 하의 단일 시장으로 통합시켰는데,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경영환경의 변화를 야기하였다. 하나는 WTO 규정 상 종전까지 후발 개도국이 통상 활용하였던 특정 산업에 대한 명시적인 보호 및 지원정책의 시행이 어려워졌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간 경쟁이 내수시장에 국한되지 않고 글로벌 수준으로 확대되면서 격화될 경쟁에 대비하여 기업 경쟁력을 높여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정책 방식을 직접 지원이 아닌 간접 지원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였는데, 완성차 수입 관세의 점진적 인하를 통한 국내시장 경쟁 확대로 국내 업체의 경쟁력 향상을 도모한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 그리고 그 결과, 한국 자동차산업은 선진 업체로부터 일방적으로 이전받던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는 단계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상에서 보듯이 1960년대 이후 1990년대까지 한국 자동차산업의 발전 단계는 결과적으로 정부 정책의 수준에 따라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볼 때 여하한 방식의 정책을 시행하더라도 자동차산업 발전에 정부 정책의 역할이 지대하였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의 자동차 산업정책의 전개 방향은 어떠해야 할지가 관심이 아닐 수 없는데, 이를 알기 위해서는 최근의 자동차산업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 양상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정책에 대해 언급하면서 글로벌 경제의 진전이라는 경영환경의 변화가 정책 방식의 변화를 가져왔음을 보았는데, 21세기에 들어서 자동차산업의 환경은 더욱 다양하면서도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1, 2차 오일쇼크 이후 약 20년간 안정세를 보이던 국제유가를 비롯해 철광석 등 각종 원자재 가격이 2000년대 중반 이후 급등하면서 향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고수준을 유지하리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주요 경제변수의 변화는 대체 에너지 개발, 차량 경량화, 파워트레인 자체의 개선 등 핵심 자동차 기술의 진보를 요구한다. 또 다른 예는 소비자들의 기호가 자동차의 안정성과 편의성을 추구하게 되면서 나타나는 자동차의 전장화이다. 자동차의 안전, 편의, 성능 향상의 관건은 결국 자동차 내에 탑재되는 전자기술 수준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로 자동차 전장화는 급속하게 진전되고 있다.
또한 경쟁 양상과 관련해서는 경쟁방식의 변화가 과거와는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이제는 규모의 경제 실현과 더불어 시장의 변동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의 확보가 요구될 뿐만 아니라, 완성차업체간의 개별적 경쟁이 아닌 글로벌시장 차원에서의 네트워크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단순한 양적 확대 전략이 아닌 완성차와 부품업체간, 자동차와 에너지, 전자 등 이업종간, 심지어 경쟁업체와도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네트워킹 능력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자동차산업에 있어 협력업체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어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의 동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명확한 비전과 정책 목표가 설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자동차산업 환경의 변화 양상을 바탕으로 향후 자동차 산업정책이 지향해야 할 기본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겠다. 이 기본 방향은 사전적으로 정책의 수립 및 집행 단계에서의 적절성을 보장하는 한편, 사후적으로는 정책의 효과를 최적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즉 정부의 산업정책이 투입되는 자원과 대비하여 산출되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원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첫 번째 방향은 변화하는 자동차산업 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정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전술한 바와 같이 21세기의 자동차산업을 둘러싼 환경은 전장화, 환경 친화, 경량화 등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융합 기술에 대한 연구 및 개발뿐만 아니라 그 성과가 실용화 단계까지 효율적으로 연계되어 활용될 수 있도록 정책 내용이 수립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방향은 자동차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간의 협력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는 정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의 협력은 ‘어떤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힘을 합친다’는 뜻을 지닌 'collaboration'으로, 흔히 사용하는 'cooperation'보다 더 강력한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산업정책을 적절히 활용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 강화하는 일본의 경우가 이러한 collaboration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즉 정부와 시장은 전략적 협력(strategic collaboration)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는 정부와 시장이 상호 보완관계라는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조정자, 중재자의 역할을 하면서 이해관계자 간의 커뮤니케이션 활성화에 주력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앞으로는 정부-기업간, 완성차업체-부품업체간 소통에 더해 자동차산업-정보통신 등의 첨단산업간, 즉 異업종간의 소통이 정책의 효과 달성에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러한 두 번째 방향에 초점을 둔 정책의 수립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본 정책 방향을 전제로 세부적으로 수립될 자동차 산업정책의 기대 효과로는, 선진기술 캣치업 및 선도기술 개발의 조기 달성,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첨단 소재산업, 메카트로닉스 산업 등과의 융합 발전 촉진 및 미래 성장 동력으로서의 역할 수행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자동차부품뿐만 아니라 관련 산업 발전의 중추가 되는 중소기업의 기술 역량 강화와 글로벌 진출 확대 등으로 중소(中小)기업에서 강소(强小)기업으로 탈바꿈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이를 통해 양극화 해소에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민-관, 업체간, 이업종간 등 이해관계자간의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를 통한 정보 및 지식 공유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며, 이는 한국 경제· 사회 선진화의 기반이 될 지적 자원의 형성 및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역사적인 경험 면에서나 미래의 산업 발전 방향의 측면에서나 자동차산업에 있어서 정책의 역할은 대단히 큰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경제 환경의 악화로 인해 미시정책과 거시정책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현 시점에서 한국경제가 활력을 되찾아 잠재성장률 7%를 달성하는 한편, 경제 및 사회구조의 선진화를 주도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산업정책, 그중에서도 자동차 산업정책의 핵심적인 촉매로서의 역할이 더욱 절실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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