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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화 시대를 맞이한 완성차 기업의 브랜드 차별화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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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ICA
댓글 0건 조회 143회 작성일 22-02-0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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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화 시대를 맞이한 완성차 기업의 브랜드 차별화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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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중 책임연구원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전략본부

□ 그간 자동차 업계에서는 완성차 기업이 제품을 통해 브랜드의 방향성을 주도
 오늘날 신생 기업의 각축장인 중국을 제외해도 세계에는 50개 이상의 크고 작은 완성차 브랜드가 공존하고 있다. 소비자는 브랜드 평판에 근거하여 자동차를 믿고 구매하며, 경험을 통해 해당 브랜드와의 심리적인 관계를 만들어간다. 한편 공급자인 완성차 기업은 소비자의 브랜드 로열티(loyalty)를 확보함으로써 시장에서 수익을 얻고, 꾸준한 성장을 유지할 수 있다.
  완성차 브랜드는 각기 고유한 브랜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미국의 자동차 평가기관 Kelley Blue Book의 2021년 2분기 조사에 의하면, 미국 소비자는 럭셔리 자동차 중 신뢰성은 Lexus, 안전성은 Volvo, 운전의 편안함은 Cadillac, 성능은 Porsche 등과 같이 각 브랜드별로 뚜렷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러한 브랜드 이미지는 대부분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오늘날유명 완성차 브랜드 대부분은 과거 기술적 혁신, 모터스포츠에서의 성과 등 기념비적 역사를 갖고 있다. 예컨대 Volvo는 양산차 최초로 3점식 안전벨트와 보행자용 에어백(pedestrian airbag) 등을 적용하면서 사람들에게 안전한 자동차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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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랜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인식하고 있는 완성차 기업들이 브랜드 차별화를 위해 중점을 두는 것은 바로 ‘제품’이다. 각 기업은 제품 자체, 또는 제품을 만드는 방식 등에 대한 철학을 바탕으로 파워트레인이나 섀시와 같은 자동차의 핵심 요소에 대한 설계·생산 역량을 쌓아 왔다. 특히 고도의 기계공학이 접목된 엔진과 변속기를 설계하고 조합하여 탑승자에게 차별화된 경험을 선사하는 것은 완성차 기업의 고유한 역할이라는 점이 당연시되었다. 주요 완성차 기업 대다수가 고유의 엔진 기술을 갖고 있고, Daimler, GM, VW, Toyota(Aisin Seiki), 현대차 등은 변속기 기술까지 내재화하였다는 사실은 제품에 기반해 고유의 브랜드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완성차 기업의 의지를 잘 보여준다.   

□ 기술 변혁기를 맞아 부품 업계와 완성차 기업과의 관계가 변화
 그러나 완성차 기업이 주도권을 갖고 제품을 설계·차별화한다는 원칙은 갈수록 흔들리고 있다. 최근 자동차산업의 대표 트렌드인 전동화 파워트레인 중심 친환경화, 각종 IT 기술의 유입 등이 근본 원인이다. 기술 변화는 완성차 기업과 부품업계의 관계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관계의 변화 양상은 두 가지로 대별된다. 
 첫째는 초대형 부품 기업의 사업 영역 변화와 고객사 맞춤형 솔루션 제공 확대이다. 전장 부품의 탑재 증가로 자동차 제조 원가에서 전장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2030년에는 50%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1), 세계 주요 부품기업은 전동화 파워트레인·전장 사업을 확대하는 한편 기존 주력 사업부를 정리하고 있다2). 또한 기업 내부 역량이 부족한 경우 기업 인수합병(M&A) 및 전략적 제휴를 과감히 추진하고 있다3). 그리고 이들 기업은 신사업 부문에서 완성차 기업에 필요한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예를 들어 Bosch, Continental, BorgWarner 등의 초대형 부품기업은 전동화 파워트레인의 소형화·통합화 추세에 부응하여 통합 드라이브 모듈(EDM)을 솔루션 형태로 완성차 기업에 제공하고 있다.
 둘째는 자동차 부품산업의 외연 확장에 따른 새로운 기업들의 참여이다. IT·S/W·반도체 기업들은 자율주행 기술이나 전기전자 아키텍쳐 변화 등에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고, 고성능 반도체 기반의 자율주행 솔루션(Nvidia, Qualcomm 등)이나 자동차용 통합 운영체제(Android Automotive) 등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파워트레인 전동화로 자동차산업에서 배터리 기업의 중요성이 확대되고 있다. 완성차 기업은 전기차 가격 경쟁력 및 신뢰성 확보에 사활을 걸고 그중 일부는 배터리 내재화를 희망하고 있으나, 투자 여력이 부족한 기업들은 당분간은 특정 배터리 기업이 제시하는 기술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에는 전기차 판매가격 저감을 위해 비용이 낮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대한 완성차 기업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인데, 현재로서 이 배터리는 CATL, BYD, CALB 등의 중국 기업만이 대량 생산하고 있어 완성차 기업의 입장에서는 해당 공급처에 대한 의존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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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차를 중심으로 완성차 기업 주도의 제품 차별화 여지가 감소하는 경향
  전술하였듯이 초대형 부품기업의 영향력 확대, 부품산업의 외연 확장에 따른 신생 기업의 참여 등으로 산업 구조가 변화하고 있는데, 그 결과로서 눈여겨볼 부분은 완성차 기업 주도의 제품 차별화 여지가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전기차(BEV)를 중심으로 제품의 차별성 감소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대표적인 예시로서, 전기차의 성능을 좌우하는 부품 공급 동향을 살펴보기로 한다. Continental 산하 Vitesco社가 공급하는 소형 구동 모터는 Peugeot, Opel, Citroen 뿐만 아니라 Dongfeng 그룹 등에 공통 탑재되었고, 이들 차량 간의 각종 성능 지표는 매우 유사한 것으로 나타난다. 전기차의 주행가능거리 및 안전성에 직결되는 배터리용 열관리 시스템은 Mahle社 제품이 Audi, Ford, Seat, SAIC 등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또한 인버터는 Valeo社 제품이 Volkswagen, Citroen, Mercedes-Benz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열거한 부품들이 전기차의 핵심 부품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구동 성능 측면에서 제품 차별화를 위한 완성차 기업의 주도권은 예전에 비해 상당 부분 감소할 것임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전기차 시대를 맞이하여 고성능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에도 위기 요인이 누적되고 있다. 이들 브랜드는 차별화된 성능과 감성적 특성을 부여한 제품에 근거해 가격 프리미엄을 누리고 대중적 선망의 대상이 되어 왔다. 각 기업은 설계 철학에 따라 구동 방식 및 엔진·변속기의 형태와 위치 등으로 성능의 차별화를 꾀했고, 모터스포츠 등에서 성능의 우위를 입증해왔다. 그러나 전기차는 배터리와 구동 부품의 위치 등에서 현재로서는 전형적인 설계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최근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Tesla 등 전기차 선도 기업 제품의 구동 성능, 주행 거리, 충전 속도 등을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으로 여기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기존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는 기술 추격 압력을 받고 있다. 이들 기업은 제품상의 차별성을 살리는 것에 더해 선도 기업이 이룩한 기술적 성취를 추월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최근 전동화 자동차의 동력 성능이 상향평준화 되고 고성능 브랜드와 대중 브랜드 간 성능 차이점이 뚜렷하지 않아, 프리미엄 브랜드를 보유한 완성차 기업의 고심은 깊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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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후 제품 차별화 측면에서는 UI/UX나 다목적성(versatility)의 가치가 부각될 전망
  차의 구동 성능과 관련된 차별화 여지가 감소한 상황에서 완성차 기업은 제품의 새로운 측면에 주목하고 있다. 그것은 사용자 인터페이스(UI) 및 사용자 경험(UX), 그리고 자동차를 주행 이외의 목적으로 활용하는 다목적성(versatility)이다. 이러한 방향성은 단지 이동 수단이 아닌 ‘공간’으로서 자동차의 가치를 재조명하려는 시도라고도 볼 수 있다. 
  먼저 UI/UX 측면에서는 탑승자 경험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한 경쟁이 심화될 전망이다. 최근 운전자에 대해서는 자동차 디스플레이의 범위를 전면 유리나 미러 등으로 확장하여 안전 운행을 지원하거나, 스티어링 휠의 조작성과 기능을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완성차 기업은 ADAS(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 기술 발전과 연계하여 보다 나은 운전자 인터페이스의 표준형을 선점하고자 노력 중이며, 향후 운전자 조작성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신기술이 제품의 차별화 요소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차량 내 탑승자에게 유희를 제공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이 도입되고 있다. 그중 전기차 특유의 정숙성을 살려 영상·음향 체험을 극대화하기 위한 능동 소음제어 기술의 적용 범위가 확대되고, 인공적인 음향 효과로 탑승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운드 제너레이터(sound generator) 기술도 폭넓게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전기차 충전 등 탑승자 대기 상황에서 유용한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 시스템의 콘텐츠 제공 범위는 미디어 기업과의 연계를 통해 더욱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다음으로 COVID-19로 보편화된 Private Economy5)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차를 이동수단 외의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는 기술이 보편화될 전망이다. 자동차를 이용한 여행이나 캠핑이 활발해지면서, 많은 소비자들이 차 안팎에서 어떠한 활동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주로 전기차를 중심으로 새로운 기술적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구동 배터리에 저장된 전력을 송출하여 에너지 소모량이 많은 전기·전자 장비 사용이 가능하게 해주는6) V2L(Vehicle to Load) 기능은 대부분의 전기차로 보편화될 것이며, 이를 통해 자동차 중심의 여가·업무활동 공간을 창출하거나 각종 재난 상황을 대비한다는 개념이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차의 활용가치를 보다 높일 수 있는 좌석 배치나 다양한 부가 장비가 등장할 것이며, 완성차 기업은 고객 맞춤형 애프터마켓 제품을 보다 폭넓게 제공하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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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품 外 측면에서는 자동차 판매 전후의 서비스 차별화가 중요하게 대두할 전망
 제품 차별화에 난항을 거듭하는 완성차 기업은 자동차 판매 전후의 서비스에서도 새로운 차별화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자동차 판매 前 단계부터 차별화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는 동시에, 판매 이후의 차량 유지, 정비 등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 판매 이전 단계에서 주목할 부분은 브랜드 체험 기회의 확대와 온라인 서비스의 부각이다. 체험 측면에서는 최근 완성차 기업들이 구독(subscription) 서비스로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를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려는 노력이 눈에 띈다. 국내에서는 ‘현대 셀렉션’이나 ‘기아 플렉스’ 등의 서비스가 고성능·친환경차 시승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기존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일조할 것으로 판단된다. 온라인 서비스 측면에서는 디지털 쇼룸을 통해 소비자가 원하는 세부 정보를 제공하고 소비자 맞춤형으로 외관과 내장을 구성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데 완성차 기업의 노력이 집중될 전망이다. 한편 온라인 자동차 판매는 계속해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데7), 오프라인 딜러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자동차 판매를 통한 완성차 기업의 이윤 증대 효과가 Tesla 등의 사례에서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판매 이후 단계에서는 운행 및 유지보수, 그리고 OTA(Over-The-Air)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측면에서의 서비스 차별화가 예상된다. 먼저 운행 측면에서는 완성차 기업들이 자사 전기차 전용 고속충전(250kW 이상) 인프라를 확충하고, 찾아가는 충전 서비스 등을 제공하여 전기차의 편의성을 개선하는데 노력을 집중하는 추세이다. 그리고 유지보수 측면에서 자동차 주요 부품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고장 징후, 잔여 수명 등을 진단하는 PHM(Prognostics & Health Management) 기술과 연계하여, 원격 진단 및 비대면 정비 서비스의 확장이 예상된다. 한편 OTA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기술은 앞서 언급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개선하거나 기능을 새롭게 추가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데, OTA 업데이트의 수준과 빈도가 브랜드 차별화에서 핵심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완성차 기업 간의 사활을 건 경쟁이 시작될 확실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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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rand View Research(2021). “Automotive Electronics Market Size, Share, and Trends Analysis Report”
2) Bosch의 내연기관 부품 사업부 SEG에 일부 매각(2018년), Aisin Seiki와 Aisin AW의 합병(2021년) 등 
3) ZF의 TRW 인수(2015년), Borgwarner의 Delphi 인수(2020년), Magna와 LG의 합작사 설립(2021년), Faurecia의 Hella 인수(2021년) 등
4) 특히 운동 성능이 뛰어난 경량 스포츠카나 프리미엄 소형차를 지향하는 기업이 제품 차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5) 불특정 다수와의 접촉 대신 가족 등 소수의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경제 활동을 의미하는 신조어
6) 내연기관 자동차는 제너레이터와 배터리 용량의 제약으로 인해 에너지 소모가 많은 전기·전자 장비 사용이 제한됨 
7) 다만 국내에서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실질적인 가격 인하 효과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온라인 신차 판매가 자리 잡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