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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핵심원자재법(CRMA) 주요 내용과 전기차·배터리 업계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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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ICA
댓글 0건 조회 142회 작성일 23-05-12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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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핵심원자재법(CRMA) 주요 내용과 전기차·배터리 업계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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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한아름 연구원

 EU집행위원회는 지난 3월 16일 핵심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s Act, 이하 CRMA) 초안을 발표했다. 탄소중립, 디지털 전환, 우주, 방위산업 등 전략산업에 없어서는 안될 광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EU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 초안에 담겼다. EU집행위는 2030년까지 핵심원자재 중에서도 더 중요한 전략원자재 16종의 역외 특정국에 대한 의존도가 65%를 넘지 않도록 EU 역내 원자재 생산·가공·재활용 역량을 강화하고 수입원을 다변화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CRMA는 전기차와 배터리 업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는 기존의 내연기관차 대비 광물 사용량이 6배에 달한다. 전기차 배터리에는 CRMA 초안에서 선정된 전략원자재 16종 중 리튬, 니켈 등 5종이 사용되고, 전기차 모터의 핵심 부품인 영구자석에는 또 다른 전략원자재인 희토류 원소가 투입된다. 특히 EU는 우리나라 전기차 수출의 42.3%, 전기차용 배터리 수출의 38.2%를 차지하는 주요 수출 시장인 만큼, 관련 기업은 CRMA 주요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고 잠재적 공급망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1. EU 핵심원자재법(CRMA) 입법 배경
  핵심원자재 공급망에 대한 EU 내부에서의 정책적 논의는 2008년부터 시작되었다. 2000년대 후반 중국, 러시아 등 주요 자원보유국이 자원을 통제하여 시장질서를 왜곡하자, EU는 ‘원자재 이니셔티브(Raw Materials Initiative)’를 발표하며 EU 차원의 대응에 나섰다. 2011년부터는 핵심원자재(Critical Raw Materials)를 3년마다 지정하여 공급망 리스크를 관리해왔다. 그러나 일련의 원자재 공급망 안정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EU의 핵심원자재 대외의존도는 여전히 높고, 그 중에서도 중희토류의 100%, 경희토류의 85%, 마그네슘의 97%를 중국에서 수입할 정도로 대중국 의존도가 높다. 역내에서 추진 중인 신규광산 프로젝트는 환경오염을 우려하는 지역사회의 반대와 높은 생산비용으로 인해 진척이 더딘 상황이다. 

 <표1> 2023년 EU 핵심원자재 주요 공급국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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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공급비중 파악이 불가능한 코발트, 백금족 원소 제외 
   2) 빨간색으로 표시된 광종은 중국, 초록색은 EU 역내 국가, 노란색은 기타 제3국의 공급비중이 가장 높음
   3) 굵게 표시된 광종은 역외 특정국에 대한 공급의존도가 65% 이상
자료: EU Commission(2023)

<그림1> 2023년 EU 핵심원자재 주요 공급국 현황 
6ca8942aa80f50de7f613ef8ad882227_1683894203_218.png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를 겪으며 원자재의 높은 대외 의존성 해소가 EU의 주요 정책 현안으로 대두되었다. 중국이 빈번하게 자원을 무기화하는 데에 따른 공급망 교란 우려도 이번 초안에 반영되었고, 인도네시아, 칠레를 비롯한 다른 자원보유국의 자원 국유화 및 수출통제 등 자원민족주의 기조의 확산도 위기감을 더했다. 결정적으로 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이하 IRA)을 통해 전기차·배터리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한 움직임에 나서자, EU도 생산시설의 역외이전을 방지하기 위해 ‘그린딜 산업계획(Green Deal Industry Plan)’ 등 역내 제조산업 육성정책을 본격화하고 있고, CRMA도 그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 
 
2. EU 핵심원자재법(CRMA) 주요 내용

< 그림2 > EU 핵심원자재법(CRMA) 주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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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CRMA 초안은 2030년까지 EU의 연간 전략원자재 수요량 대비 채굴 10%, 제련 및 정제 40%, 재활용 15%까지 역내 생산역량을 확대하는 동시에, 역외 특정국에 대한 전략원자재 수입의존도가 65%를 넘지 않도록 공급원을 다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략원자재는 핵심원자재 중에서도 디지털 및 친환경 전환, 우주, 방산 등 네 개의 전략 분야에 필수불가결한 원자재 16종으로, EU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비축하고 공동구매에 나선다. 아울러 역내 전략원자재 확보에 기여하는 프로젝트는 전략 프로젝트로 지정하고, 인허가 기간 단축, 행정절차 간소화를 통해 신속하게 추진한다. 이와 함께 ‘핵심 원자재 클럽(Critical Raw Materials Club)’과 같이 환경·노동 등 공급망의 지속가능성 요건을 충족하는 우호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원자재 공급원을 다양화한다.
<그림3> EU 전략원자재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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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 자석용 희토류 원소는 네오디뮴(Nd), 프라세오디뮴(Pr), 터븀(Tb), 디스프로슘(Dy), 가돌리늄(Gd), 사마륨(Sm), 세륨(Ce)을 포함

 CRMA 초안은 EU 전체 수요에 근거한 역내 공급 목표 및 특정국 의존도 상한선을 제시할 뿐, 개별 기업에 자국산 원자재 사용·조달 의무를 부과하지는 않는다. 자국산 원자재 비율에 따라 보조금, 세제혜택 등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수입산 광물 사용 제품을 불리하게 대우하는 규정도 없다. 다만, 전략원자재 자체 공급망 감사 및 영구자석 관련 정보공개 의무화 조항은 우리 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먼저, 전략원자재를 사용하여 전기차 배터리 등 전략적 기술을 제조하는 EU 역내 대기업은 2년마다 자체 공급망 감사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사내 이사회에 보고해야 한다. 역내 임직원 500명 이상, 연간 순매출액 1억 5,000만 유로(약 2,200억원) 이상인 기업이 대기업 요건에 해당한다. 또한, 대중국 의존도가 특히 높은 희토류를 원료로 사용하는 영구자석에 대해서는 별도 조항을 두고 영구자석의 원자재 구성 및 원자재 재활용 관련 정보 공개를 의무화한다. 영구자석이 포함된 전기 모터와 전기차도 대상 품목이며, 역내 제조 기업 뿐 아니라 EU로 수출하는 역외 수출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CRMA 초안은 더 나아가 2030년 12월 31일 이후에는 영구자석의 재활용 원자재 최소 사용 비율을 규정하는 위임법안을 도입할 수 있다고 예고한다.

3. 전기차 및 부품업계 영향과 대응방안

  (1) 전기차용 배터리

  한국 전기차용 배터리의 대EU 수출액은 2022년 9.7억 달러로, 전기차용 배터리 전체 수출 규모의 38.2%에 달한다. 양극재, 동박 등 배터리에 들어가는 부품의 대EU 수출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에 한국의 배터리 셀 및 소재·부품 제조 기업들은 EU 역내 배터리 공장 신설 및 증설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 배터리 3사 합산 EU 역내 생산능력은 2025년 248GWh, 2030년 380GWh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EU에 진출한 해당 기업의 상당수가 ‘전략원자재를 사용하여 전략적 기술을 제조하는 EU 역내 대기업’ 요건에 해당하여, CRMA 초안 기준으로는 전략원자재 공급망 자체 감사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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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한국 전기차용 배터리의 수출시장 비중은 HS code 8507.60.2000, ‘22년 수출금액 기준 
    2) 한국 배터리 소재부품 대EU 수출추이는 양극재 HS code 2841.90, 동박 7410.11, ‘18~’22년 수출금액 기준
    3) 양극재, 동박은 전기차 외 IT제품,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사용되는 모든 리튬이온배터리용 부품을 포함
자료: 한국무역협회(K-stat)
 
 또 다른 문제는 우리 기업의 배터리 전략원자재에 대한 대중국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다는 사실이다. 2022년 기준 전체 수입액 대비 중국 수입 의존도는 수산화리튬 87.9%, 코발트 72.8%, 천연 흑연 93.9%에 달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해당 원자재의 중국 생산 비중이 높음을 감안하더라도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물론 CRMA 초안은 미국의 IRA와는 달리 자국산 원자재 사용·조달 요건이나 외국산 원자재 사용에 대한 명시적 차별조항은 없다. 그러나 향후 입법 과정에서 보다 강화된 조치가 도입되거나 공급망실사지침 등 다른 법안과 연계하여 규제가 이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리스크 관리를 위해 중국산 핵심원자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수입선 다변화, 재활용 원자재 사용 확대 등의 대안을 빠르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원자재 공급망 다변화에 따른 원가 상승은 불가피하므로 비용 상승의 부담이 발생할 수 있음에도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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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RMA 초안에 우리 기업에 대한 차별조항이 없는 것은 긍정적이나, IRA와 같이 중국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차별조항 또한 없어 우리 기업에 대한 반사이익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2022년 기준 우리 배터리 기업들의 유럽 시장 내 점유율은 국내 3사 합산 64%에 달하나 중국 기업의 빠른 추격으로 가파른 하락세에 있다. 중국산 원자재에 대한 규제가 중국 배터리 기업에 무조건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주요 경쟁사인 중국의 CATL은 이미 지분 투자, M&A의 방식으로 핵심원자재 공급망을 호주, 캐나다 등으로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친환경 산업의 가치사슬 전반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미국과 EU의 정책적 기조 하에서도 현지 완성차 업체들은 CATL, BYD 등 중국기업과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등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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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기차 및 전기모터

  CRMA 초안은 영구자석을 사용하는 전기모터, 전기차를 대상으로 영구자석 관련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는 영구자석을 직접 조달해 생산에 투입하는 역내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해당 품목을 EU로 수출하는 역외기업이나 영구자석이 포함된 중간재를 조달하는 다운스트림 기업에도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순수 전기차(BEV)를 비롯 전기모터를 탑재한 친환경차의 2022년 대EU 수출은 68억달러로 대EU 총수출액의 9.1%를 차지했으며, 전체 친환경차 수출에서 EU가 차지하는 비중도 42.3%로 가장 높다. 전기차 모터의 경우에도 EU는 전체 수출의 51.4%를 차지하는 주요 수출 시장이다. 그 만큼 관련 기업의 주의가 요구된다.

<표4> 2022년도 전기차 및 전기차 모터 대EU 수출액 및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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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CRMA 초안에 따르면 영구자석을 사용하는 다운스트림 기업은 네오디뮴 등 개별 원자재의 공급망을 적극적으로 모니터링 및 관리해야 할 의무까지는 없어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다. 다만, 영구자석에 사용된 원자재 정보와 원자재 재활용 방법 등의 세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업스트림 기업과 협력해 원자재 정보 공유 시스템을 사전에 구축해야 한다. 또한, 2030년 이후 영구자석과 관련해 재활용 원자재 최소 비율을 규정하는 위임법안이 도입될 수 있으므로 영구자석 또는 영구자석이 포함된 중간재 조달 시 원자재 공급원 및 재활용 비율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4. 향후 입법과정 전망 및 시사점

  현재 발표된 CRMA 내용은 EU집행위원회의 초안이다. 향후 집행위-이사회-의회 3자 협의 과정을 거쳐 최종안이 도출된다. 초안 상으로는 원자재 원산지 요건을 강제하고 있지 않지만, 협의 과정에서 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역내 원자재 생산 및 구매를 촉진하기 위한 재정적 인센티브나 단일국가 의존도 규제 조항 등 보다 강화된 조치도 수정 또는 추가될 수 있을 것이다. 전략원자재 리스트나 공급망 자체 감사 대상인 ‘대기업(Large Companies)’ 요건, 영구자석 관련 공개 대상 세부 정보 등 구체적인 내용도 변경될 수 있다. 또한, CRMA 뿐만 아니라 공급망실사지침, ‘한시적 위기 및 전환 프레임워크(TCTF)’에 따른 매칭 보조금 지원 요건, 에코디자인 등 핵심원자재와 관련하여 CRMA와 연계하여 적용될 수 있는 다른 제도의 도입도 함께 모니터링해야 한다. 

  한편, 미국과 EU의 대중 의존도 축소 움직임이 원자재를 둘러싼 통상분쟁을 촉발할 가능성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 미국, EU의 공급망 재편 정책에 대응하여 중국은 자국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핵심원자재의 수출이나 생산량을 통제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반격에 나서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2022년 12월 30일 ’수출 금지 및 제한 목록(中国禁止出口限制出口技术目录)‘에 관한 개정 초안을 발표하여, 희토류 정제·가공 및 네오디뮴, 사마륨코발트 등 희토류 자성체 등 제조기술에 대한 수출 통제 의도를 밝혔다. 관련 기업은 핵심원자재를 둘러싸고 확대되고 있는 공급망 리스크를 면밀히 살피고 선제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함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